어느덧 6년이 흘렀다. 소설책보다 전공도서가 종이신문보다는 PDF논문이 더 친숙하다. 연구 이외에 관심을 멀리한 때문인지 자유주제로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받은 원고의뢰가 매우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제 갓 대학원에 들어온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간단히 해보려 한다.
대학원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더러 관심분야 또는 연구주제에 대해 ‘왜’ 그리고 ‘어떻게’라는 부분을 간과한다. 필자도 그저 연구실에 가면 교수님과 선배들이 알아서 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 처음 교수님으로부터 큰 틀의 연구주제를 받고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어느 선배로부터 금과옥조와 같은 말을 들었다.
“네가 능동적으로 연구를 주도해야 해. 결과적으로 그게 너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줄 거야.”
능동적으로 연구를 주도한다는 말은 무엇일까? 전공지식이 풍부하면 되는 것일까? 툭 던진 조언에 고심하다 그 선배가 어떻게 연구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박사학위 중에 이미 다수의 유명 저널논문을 보유한 그 선배는 새로운 연구를 시작할 때 항상 수십 편의 논문을 읽곤 했다. 그러고는 각 논문마다 대표그림, 간략한 설명(장단점을 분석), 저널명과 발행연도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전개도 형식으로 정리했다.
‘리뷰 논문을 보면 되는 것을 왜 저렇게 고생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그 선배가 하던 것을 그대로 따라해 보았다. 파워포인트를 활용해 가지치기를 하고, 대주제로부터 소주제를 분류해 나가며 전반적인 연구경향을 분석했다. 경험이 없는 대학원 신입생이 수십 편의 논문을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어렵사리 스스로 만든 전개도를 보는 순간, 좋은 저널논문을 보유한 그 선배의 비결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많은 대학원생들이 그러하듯 논문 몇 편의 서론에 의존한다거나, 혹은 다수의 논문을 읽더라도 그것을 파일박스로 분류해 놓는 정도로는 전체적인 흐름을 꿰뚫기 어렵다. 논문의 서론은 저자가 자신의 연구결과를 돋보이게 주관적으로 설계할 수 있으며, 리뷰나 책은 챕터별로 설명하지만 초보 연구자가 쉽게 이해할 만큼 배려심이 깊지 않다.
정리를 하면 할수록 논문으로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들이 많이 떠올랐다. 이를 정리해 교수님, 선배들과 논의해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더라도 연구실과 본인의 현실적인 역량이 뒷받침이 되지 못하면 소리없는 아우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공동연구를 통해서 실험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원생에게 석사 2년, 박사 4년의 시간은 외부에서 느끼는 것과 달리 꽤 빠르게 지나간다. 연구실 분위기에 적응하고, 실험장비와 방법을 배워 선행연구를 하다보면 몇 개월은 순간이고 어느덧 디펜스 날짜가 다가온다.
석사 2년의 기간에 학위논문 또는 더 나아가 저널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를 연구주제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전반적인 연구경향과 현실적인 연구환경에 대한 고려없이 아이디어의 기발함에 취해 무턱대고 뛰어들면 곱절의 시간을 투자하고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 힘들어질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서 계속 가자니 힘들고 버리자니 아까운 계륵과 같은 상황에 놓여 낙담하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을 꽤 봤다.
먼저 앞서나가는 동료들이 보여주는 퍼포먼스에 마음이 조급해 질 수도 있다. 필자도 한 때는 그랬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석사와 박사과정 그리고 심지어 포스닥도 트레이닝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본 게임은 아직 시작된 게 아니다.
|
|
|
|
박유신 광주과학기술원 신소재공학과 박사과정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미래융합파이오니어사업 등을 통해 나노임프린트 리소그래피 기술을 기반으로 한 가스센서를 연구하고 있다. |
|
|
|